Life/Book

방금 떠나온 세계

13.d_dk 2022. 3. 25. 23: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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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람의 여러 감각들을 바탕으로 펼쳐나가는 SF 소설집

  • 개인적으로 김초엽 작가님의 SF 소설을 정말 재미있게 생각하고 좋아한다. 뭔가 모를 현실감이 느껴지는 미래의 이야기와 함께 사람의 어떤 이야기들을 잘 펼쳐내기 때문이라고 생각한다. 이번 소설집에 수록된 소설에서는 또 다른 재미를 찾게 되었다. 그 부분은 인간의 감각과 인지와 관련된 SF 소설이다. 미래에 우리가 살아가면서 과학 기술을 바탕으로 유지하고, 발전시키고, 잃어버릴 수많은 인간의 감각들과 연관된 소설들이 이번 '방금 떠나온 세계'에 수록되어 있다.
  • 소설집의 제목인 '방금 떠나온 세계'는 수록된 소설의 느낌을 잘 표현한 제목이라고 생각한다. 지금의 세계가 지금 독자가 가지고 있는 감각으로 감각하는 세계(떠나온 서계)라면, 이 소설 속의 세계(도착한 세계)는 조금 다른 감각에 대한 이야기를 펼치고 있다. 향기로운 꽃의 냄새를 맡고, 부드러운 이불의 촉감을 기억하고, 시끄러운 소리를 듣고, 눈으로 멋진 것을 보았던 우리의 감각과 기억들이 있다. 이를 조금 비트는 현실감 있는 소설, 미래의 이야기가 궁금하다면 소설집 '방금 떠나온 세계'는 꽤 멋진 소설이 되어줄 수 있다. 혹은 기존의 감각과는 또 다른, 비슷한, 아니면 기존의 감각을 더 섬세하게 하는 이야기를 만나고 싶다면 이 소설집은 정말 재미있을 것이다.

방금 떠나온 세계 책 표지. 여러 세계에서 다양한 감각을 손으로 감각하는듯한 책 표지가 인상적이다.

 

여러 소설에서 느끼는 여러 기존과 비슷한, 다른 감각들에 대하여

  • 각 소설에서 이야기로 다루는 감각들은 조금씩 다르다. 각 소설에서 이러한 감각에 초점을 맞추어 생각들을 적어보고자 한다.
 
최후의 라이오니
  • 이 소설 속에서는 영원할 것 같았던 평화롭고 안정적인 세계가 과거의 이야기로 나온다. 자신을 복제하여 영원히 자신으로 살아가는 삶. 여기서 전염병이 발생하여 복제가 불가능해지면서 사람들은 죽음에 대한 공포를 감각하기 시작한다. 영원한 것이라고 믿었던 부분이 무너지면서 사람들은 혼란에 빠진다.
  • 사실 이 소설은 이전에 '팬데믹; 여섯 개의 세계'라는 SF 소설집에서 읽은 적이 있다. 위에서 영원할 것 같은 삶이 무너지는 것(심지어 전염병으로)은 코로나로 평화롭고 안정적일 것 같던 우리의 일상이 무너지는 것과 같다고 생각한다. 잘 알지 못하는 전염병으로 많은 사람이 죽고 감염되는 상황 속에서 무기력함을 느꼈던 경험이 있다. 코로나 초기에 한국에서 유독 많은 확진자가 발생한 적이 있었다. 주말에 어디 나가고 싶은데 마스크 없이 나갈 수 없고, 이렇게 다 죽는 것은 아닌지 막연한 공포감이 생기는 그러한 무력감을 느꼈다.
  • 결과적으로는 약 3년이라는 시간이 흘렀고 잘 견뎌내고 더 나아진 부분도 많다. 그 당시에는 그러한 무력감을 떨쳐버릴 수 없어 꽤 괴로웠다. 이제 우리는 다른 이런 공포에 대한 감각이 생길 때 어떻게 할지 소설 속 내용과 우리의 일상 속 내용 중 선택할 수 있다. 그리고 지금의 우리는 지금과 같은 선택 아니면 더 나은 선택으로 잘 이겨내리라 생각한다. 공포에 대한 감각이 나쁜 것은 아니다. 더 나은 곳으로 갈 수 있게 해주는 가장 소중한 감각일지도 모른다.
마리의 춤
  • 이 소설에서는 시지각 이상이 있는 사람들과 이들을 위한 장치가 나온다. 소설에서는 시지각 이상이 있는 사람들이 어떻게 세상을 인식하는지 표현하고 있다. 동시에 소설 속에서는 시지각 이상이 있는 사람들이 도움을 받기 위한 도구를 사용할 때 어떻게 감각을 인지하는지 표현한다.
  • 나는 시력교정술로 렌즈삽입술을 받았다. 받은 이후 눈으로 느끼고 보고 하는 것들에서 많은 차이가 있다. 소설 속의 시지각 이상자가 감각하는 시각은 항상 시력이 나쁜 상태로 선글라스를 착용하고 다니는 느낌일 것 같다. 소설 속의 시지각 이상자를 도와주는 도구는 현실에서 어떤 감각으로 바꾸어 표현할 수 있을까? 내가 보고 있는 시각과 다른 사람이 보는 시각이 합쳐짐과 동시에 그 다른 사람의 말소리도 들을 수 있는 이 느낌은 상상하기가 어려웠다. 현실에서 감각에 대한 생각을 하던 중 소설 속 '이 도구가 미래에 만들어지는 할까?', '다르게 만들지는 않을까?'라는 생각이 많이 들었다.
로라
  • 생활하다가 팔이 하나 더 있었으면 좋겠다는 생각을 한 적이 있다. 물론 그 순간에 두 팔로 무언가를 하기에 힘들어서 들었던 짧은 기능에 대한 욕망이었다. 다른 이도 이러한 경험이 있을지도 모르겠다. 이 소설에서는 기존의 신체 기관에서 추가하고 싶은 기관(팔, 다리, 귀, 코, 눈 등)에 대한 감각을 이야기한다. 예를 들어 팔이 하나 더 있다고 느끼고 그러한 팔에 가려움을 느끼거나 있는데 눈에 보이지 않아 답답한 상태를 느끼거나 하는 등의 감각이다.
  • 원래 팔이 있다가 전쟁으로 팔을 잃은 사람이 위와 같은 비슷한 상황을 겪는 신경과학 영상을 본 적이 있다. 김초엽 작가는 이를 넘어서 더 많은 신체 기관에 대한 신경 과학적인 부분을 소설로 풀어간다. 상상해본 적조차 없지만 어쩌면 팔이 2개인 시대를 넘어서, 없어진 팔을 보완하는 시대를 넘어서 인공 팔로 2개의 팔을 더 달고 사는 시대가 오지는 않을까 상상을 해보았다. 이러한 말도 안 되지만 혹시 모르는 제한 없는 상상을 김초엽 작가의 소설에서는 상상할 수 있어서 좋았다.
숨그림자
  • 우리는 후각으로도 기억을 하고는 한다. 어렸을 때 베란다에 서늘한 공간에 숨어서 밖에서 내리는 비를 볼 때, 비와 흙의 기분 좋은 비릿한 냄새가 있다. 이는 비가 오는데 흙냄새를 맡을 때 문득문득 떠오르는 기억이다. 이 소설은 후각으로 대화를 하는 미래의 어떤 인류에 대한 이야기를 적고 있다. 후각을 바탕으로 대화하는 인류와 원시 인류(지금의 우리)가 서로 느낌을 공유할 수 있는 '후각'이라는 매개로 대화하려고 하는 부분이 참 재미있었다. 후각으로 만들어낸 기억을 다른 사람에게 전달하는 방법으로 같은 냄새를 잘 담아서 보낼 수 있다면 후각으로도 대화가 되지 않을까? 이와 같은 감각에 대한 새로운 활용에 대한 상상을 할 수 있어서 재미있었다.
오래된 협약
  • 이 소설은 편지 형식으로 진행된다. 인류의 변종인 소설의 주인공은 어떤 검은 행성에서 살아간다. 이 행성의 종족들은 수명이 짧다. 그리고 대부분 지금 인류의 치매가 오는 것처럼 죽어간다. 그 이유는 대기 중의 신경 손상 물질 때문인데, 이는 행성의 어떤 식물을 먹음으로써 치유할 수 있다. 하지만 이 종족은 그 식물을 부정한 것으로 여기며 일절 손조차 닿지 않으려고 한다. 소설의 마지막에서 사실 이 행성은 살아있는 존재이며, 이 종족이 살아갈 수 있게 행성이 잠듦을 대가로 행성을 해치지 않도록 협약했기 때문임이 밝혀진다.
  • 나보다 더 삶의 위험이 있는 사람을 위해 조금 양보하는 자세를 보여주는 소설이다. 하지만 이 대상은 행성이라는 생명체와 어떤 종족과의 관계이다. 자연스레 지구와 인류 사이의 관계가 떠올랐다. 지구는 잠들어있고 인류가 살 수 있게 조금 양보한다. 하지만 우리는 더 잘 살고 오래 살기 위해서 그 협약을 깨며 살아간다는 생각이 들었다. 같은 상황이 아니지만 같은 상황처럼 보이는 이유는 무엇일까?
인지 공간
  • 이 소설도 이전에 읽은 적이 있다. 하지만 이 소설집에서 읽게 될 때는 조금 다른 감각이 보였다. 소설 속 모든 인류의 정보를 공유하는 장치가 나온다. 이 장치는 마치 컴퓨터 같았다. 지금 우리는 사람의 기억보다는 데이터로 기록된 것이 더 신뢰를 얻고 옳다고 믿어진다. 하지만 가끔은 컴퓨터가 아닌 개인의 생각과 기억이 옳을 때도 있다. 소설 속 세 번째 달처럼. 언제나 절대적인 것은 없다. 진리라는 것도 여러 조건이 맞을 때 진리가 되는 것처럼. 늘 이 생각을 기억해야겠다.
케빈 방정식
  • 주인공의 언니는 시간을 매우 느리게 인지하는 장애를 얻게 된다. '안녕?'이라고 인사를 해도 그 단어가 한 시간에 걸쳐서 느리게 들린다면 '안녕'이라고 인지할 수 없다. 소설 속에서는 매우 느리게 인식하는 개인의 시간, 장애에 대해 이야기를 한다. 어쩌면 우리는 이미 각자 개인의 시간 인지가 다를지 모르겠다. 다만 이 시간 인지의 차이가 적어서 커뮤니케이션을 할 수 있고 살아가는 것은 아닐까? 서로 다른 사람의 서로 다른 시간 인지에 대하여 여러 상상을 해보게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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